점심에 읽은 말씀, 주하의 눈물, 그리고 나의 눈물과 달란트. (요한계시록 21장 1~8 )

[점심에 읽은 말씀, 요한계시록 21장 1~8 ]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레26:11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오늘 점심 묵상가운데 눈물이라는 단어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화요일 저녁에 주하와 재하, 그리고 은혜로우신 분과 함께 새로나온 알마도라 라는 보드게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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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더미에 더 많은 군사를 배치하면 황금을 얻는 게임인데, 아이들이 주말드라마인 월계수 양복점을 너무 좋아해서 그걸 걸고 게임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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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시작하자 마자 가장 많은 황금더미에 군사들이 집결했고, 저는 전략적으로 벽을 쳐서;; 상대팀의 군사를 차단시켰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라기 보다 사건이 시작되었다. 주하의 군사들. 주하는 자기가 가진 군사의 최고군사 2장을 모두 거기에 집결 시켰는데 제가 그것을 차단해버렸던 것이다.

이제 눈물이 시작되었다.

 

게임중간까지 눈물을 참던 주하는 결국 게임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울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게임이 모두 끝나고 주하를 달래기 위해 주하 방으로 들어갔다.

“주하야, 왜? 울었어?”

(계속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 “그냥. 나도 몰라.”

“아빠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펜싱에서 득점을 할때 ‘투셰’ 라고 말한데. 펜싱 알지? 얇은 칼로 상대방을 찌르는 경기? 요즘은 전자 장비들이 있어서 펜싱의 점수를 자동으로 기록해주는데 옛날에는 누가 누구를 찔렀는지 눈으로 봐야해서 알 수가 없었데. 그럼 어떻게 점수를 계산했을까?

펜싱에서 투셰 는 “내가 찔렀다.” 라는 뜻이 아닌 “내가 찔렸다!” 라는 뜻이래.

게임을 하는 중에 상대방도 찔렀는지, 심판도 누가 누구를 찔렀는지 알 수 없지만 단 한사람! 찔린 사람은 자신이 찔렸음을 알겠지? 그래서 찔린 사람이 먼저 “투셰!” 하고 외치는 거야. 자신이 졌다는 걸 먼저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는 함께 누워서 주하에게 보여주려고 페북에 올려뒀던 영상을 봤다.

무예의 내공, 인생에서의 내공은 “내가 이겼어!” “내가 일등이야!” “내가 최고야!” 할 때 가 아닌 “내가 졌어” 라고 말할때 쌓인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주하가 보드게임에서 졌을 때 울면서 게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졌어!” 라고 말하고 내공이 쌓여서 더 멋지고 훌륭한 딸이 되어서 주하 스스로를 지키고 나쁜 일이나 슬픈일이 있을 때 우리 가족을 함께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주하의 눈물. 그리고 나의 눈물. 말씀에서의 눈물.

오늘 묵상에서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닦아 주신다고 한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니 고통 내가 안다. 다시는 사망도 없고 애통할 것도 없고 아픔도 없을것이다 하시며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한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다. 아니 아내 앞에서 많이 흘렸던 것 같다. (결혼 후 .. ) 억울함, 애통함, 아픔 등으로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런데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눈물을 흘릴 때 눈물을 닦아 주시겠다 하시는 분, 하나님께서 결국은 내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열심히 내가 가장으로 섬겨야할 가족들을 위해서 달려야 겠다. 달림. 무엇을 위해서 달리는가?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이야기가 나온다.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

하나님은 달란트의 크고 작음이 아닌 그 과정만으로 평가하시며 5달란트와 2달란트 줬던 종을 칭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못한 1달란트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버리신다고 비유한다.

오늘 눈물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내가 눈물 흘릴때, 내가 하고있는 일, 나의 달란트를 생각하며 다시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달란트는 복음이고 1 달란트 받은 종은 주님을 믿고 그 복음을 남에게 전하지 않고 게으르게 있었기에 1달란트 마져 빼앗긴 것이다. 라고 하지만 오늘 묵상가운데는,

”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가서 장사하지 않고, 두 달란트 받은 종과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 난 장사를 하려고해. 너희도 할 수 있게 도와줄께! 함께 가자!” 했다면? 하나님이 더 좋아하지 않으셨을까?

내 주변의 사람들이 저에게 그런 역활을 하기위해 함께 알고 지내고 있는 것 이기를 소망한다. 서로의 부족한 달란트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되면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다섯 달란트 가진 자가 다섯달란트 더 만들어 놓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8달란트 가진 종들이 20달란트를 만들어 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달란트 받은종, 게으른종. 믿음이 있지만 바로 나가서 장사하지 못하는 종. 그냥 땅을 파서 숨겨놓는 종. 그런 종이 나 인것 같다. 내가 아는 내 주변의 사람들, 가족, 친구들, 지인들 모두 다섯 달란트 받은, 두 달란트 받은 다른 사람들이고 서로의 눈물도 닦아주며 함께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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